이성의 순교자. 알렉산드리아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 폭도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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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히파티아는 고대 세계 최대의 지적 중심지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테온은 저명한 수학자이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학술 공동체의 마지막 알려진 구성원이었다.
어린 히파티아는 아버지의 지도 아래 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수학, 천문학, 철학을 배웠다. 테온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으며 그녀를 포괄적으로 교육했다.
히파티아는 아테네의 신플라톤 학파로 유학하여 철학, 특히 그녀의 가르침을 형성할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저작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다.
학업을 마친 후 히파티아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 수학과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강의는 지중해 전역에서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히파티아는 알렉산드리아 신플라톤 학파의 지도자가 되어 그러한 중요한 직위를 맡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그녀는 이교도와 기독교인 모두에게 철학, 수학, 천문학을 가르쳤다.
히파티아는 디오판토스의 『산술론』과 아폴로니오스의 『원뿔곡선론』에 영향력 있는 주석을 썼으며, 이 복잡한 수학 저작들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중요한 고대 지식을 보존했다.
히파티아는 아버지와 협력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주석을 개정하고, 천체관측의와 액체비중계 등 천문 기구의 개량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로서의 히파티아의 명성은 로마 제국 전역에 퍼졌다. 학생들은 그녀에게 배우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했고, 그녀는 지중해 전역의 학자들과 서신을 교환했다.
히파티아는 알렉산드리아의 로마 총독 오레스테스의 신뢰받는 고문이 되었다. 시민 문제에 대한 그녀의 조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시민 중 한 명으로서의 지위를 반영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인, 이교도, 유대인 사이의 종교적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히파티아는 모든 신앙의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며 도시의 관용적인 지적 전통을 구현했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커지고 이교 기관들이 압력을 받으면서, 히파티아는 고전 학문과 철학적 탐구의 상징이 되어 찬사와 적의를 동시에 받았다.
키릴이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임명되면서 종교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총독 오레스테스와의 긴밀한 우정으로 히파티아는 교회와 국가 간의 권력 투쟁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총대주교 키릴과 총독 오레스테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오레스테스에 대한 히파티아의 고문 역할은 그녀를 기독교 정치적 지배의 장애물로 보는 이들의 표적으로 만들었다.
히파티아가 마법을 사용해 오레스테스에게 영향을 미치고 키릴과의 화해를 막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러한 비난은 이교 지식인으로서의 그녀의 영향력에 대한 광범위한 두려움을 반영했다.
히파티아는 베드로라는 낭독자가 이끄는 기독교 광신자 무리에게 습격당했다. 그녀는 마차에서 끌어내려져 옷이 벗겨지고 기와로 살해당했다. 그녀의 시신은 불태워졌다.
히파티아의 죽음은 고전적 알렉산드리아 학문의 상징적 종말을 표시했다. 그녀는 철학과 이성적 탐구의 순교자가 되어 후대에 과학과 철학에서 여성의 전통을 보존하도록 영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