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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파미논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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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사선진 전술 발명
레욱트라에서 스파르타 격파
메세니아 해방

레욱트라에서 스파르타를 영원히 격파했다. 테베 장군, 사선진을 발명하여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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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418 BC테바이에서 출생

에파미논다스는 가난하지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오래되고 존경받았지만 경제적으로 몰락한 상태였다.

403 BC리시스에게 철학을 배우다

에파미논다스는 피타고라스 학파 철학자 리시스에게 배웠으며, 리시스는 그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금욕적인 삶을 살며 평생 독신으로 학문과 신체 수련에 전념했다.

383 BC테바이가 스파르타에 점령되다

스파르타가 테바이의 성채 카드메이아를 점령하고 친스파르타 과두정을 수립했다. 에파미논다스는 도시에 남아 조용히 생활하며 정치를 피했다.

379 BC테바이 해방

망명한 테바이 민주파가 펠로피다스의 지휘 아래 카드메이아를 탈환했다. 에파미논다스는 즉시 봉기에 합류하여 스파르타 주둔군을 축출하고 민주정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378 BC보이오타르크 선출

에파미논다스는 처음으로 보이오타르크(군사장관)로 선출되어 군사 및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테바이 군대 개혁에 착수하여 미래 승리의 기반을 닦았다.

371 BC레욱트라 전투 승리

에파미논다스는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을 격파했다. 이는 스파르타가 정면 대결에서 패배한 최초의 사례였다. 혁신적인 사선진을 사용하여 스파르타 무적의 신화를 깨뜨렸다.

371 BC스파르타 패권의 종말

레욱트라 전투 이후 테바이가 스파르타를 대신하여 그리스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많은 폴리스가 스파르타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그리스 전역의 세력 판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370 BC제1차 펠로폰네소스 원정

에파미논다스는 스파르타의 본거지인 펠로폰네소스로 군대를 이끌었다. 이 원정의 목적은 스파르타를 영구적으로 약화시키고 피지배민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370 BC메세니아 해방

에파미논다스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메세니아 해방으로, 수백 년간 스파르타 예속 상태에 종지부를 찍었다. 독립 메세니아 국가 메세네 건국을 지원했다.

369 BC메갈로폴리스 건설

에파미논다스는 아르카디아 동맹의 수도로서 메갈로폴리스 건설을 지원하여 스파르타에 대한 또 다른 방벽을 형성했다. 이 전략적 배치로 스파르타는 더욱 고립되고 약화되었다.

368 BC제2차 펠로폰네소스 원정

에파미논다스는 다시 펠로폰네소스로 진군하여 테바이 동맹국들을 지원하고 새로 독립한 폴리스들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366 BC제3차 펠로폰네소스 원정

에파미논다스는 다시 한번 펠로폰네소스의 테바이 동맹국들을 지원하기 위해 원정을 감행하여 스파르타와 그 새 동맹국들에 맞섰다. 이러한 원정들은 테바이의 자원을 소모했지만 스파르타 약화에는 효과적이었다.

365 BC테바이 해군 창설

에파미논다스는 아테네의 해상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테바이 해군 창설을 시도했다. 이 계획은 결국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략적 선견지명을 보여주었다.

362 BC만티네이아 전투

에파미논다스는 테바이군을 이끌고 만티네이아에서 스파르타-아테네 연합군과 결전을 벌였다. 테바이는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다.

362 BC만티네이아에서 전사

에파미논다스는 만티네이아 전투 승리의 순간에 창에 가슴을 관통당했다. 테바이의 승리 소식을 들을 때까지 창을 뽑지 않았으며, 그 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은 테바이 패권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