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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우스 막시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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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파비우스 전술 발명
한니발의 승리 저지
5회 집정관 역임

「지연자」 파비우스: 싸우지 않고 한니발을 물리쳤다. 게릴라전의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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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203 BC로마에서 사망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기원전 203년에 사망했다. 스키피오가 자마에서 승리하여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기 직전이었다. 국장으로 영예를 받았으며, 그의 인내와 소모의 전략은 역사를 통해 군사 지도자들이 연구하는 모범이 되어 '파비우스 전술'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

-205 BC다섯 번째 집정관 취임과 스키피오 반대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집정관으로 선출된 파비우스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프리카 침공 계획에 반대하며 먼저 이탈리아에서 한니발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키피오의 전략이 결국 성공했지만, 파비우스의 신중함은 진정한 전략적 우려를 반영했다.

-209 BC타렌툼 탈환

파비우스는 가장 위대한 군사적 업적을 달성하여 한니발에게 투항했던 전략적 도시 타렌툼을 탈환했다. 어떻게 도시를 점령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겸손하게 성문을 연 반역자의 공으로 돌리며 '반역자가 시작했다'고 답했다.

-213 BC네 번째 집정관 취임

네 번째 집정관으로서 파비우스는 로마의 사기를 유지하고 약해진 군단을 재건하는 데 힘썼다. 그의 꾸준한 리더십은 로마의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에 안정을 제공했다.

-214 BC세 번째 집정관 취임

세 번째로 집정관에 선출된 파비우스는 한니발에 대한 로마의 전략을 계속 지휘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증명된 대규모 회전을 피하면서 남이탈리아에서 잃은 영토 회복에 집중했다.

-216 BC칸나이 전투 후 전략 입증

칸나이에서의 로마의 재앙적 패배 - 5만에서 7만 명의 로마인 전사 - 는 파비우스의 신중한 접근 방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로마인들은 마침내 한니발과의 직접 대결을 피하는 그의 전략을 받아들였고, 그에게 '쿵크타토르'(지연자)라는 존칭을 부여했다.

-217 BC독재관 임명 - 파비우스 전략

트라시메노 호수의 참패 후, 파비우스는 독재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유명한 '파비우스 전략'을 실행하여 정면 회전을 피하고 대신 한니발의 군대를 괴롭히고 보급선을 끊으며 소모전으로 적을 지치게 했다.

-218 BC한니발에 대한 신중론 주창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 파비우스는 이 뛰어난 카르타고 장군에 대해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다른 이들이 즉각적인 대결을 요구하는 가운데, 파비우스는 개활지에서 한니발과 맞서는 위험을 인식했다.

-228 BC두 번째 집정관 취임

두 번째로 집정관에 선출된 파비우스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계속 쌓았다. 미래의 분쟁에 대비하여 로마의 방어와 동맹 강화에 집중했다.

-230 BC귀족과의 결혼

파비우스는 또 다른 유력한 로마 가문과 결혼하여 정치적 연결을 강화했다. 이 결혼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후에 집정관을 역임하여 가문의 공직 봉사 전통을 이어갔다.

-233 BC첫 번째 집정관 취임

파비우스는 로마 공화정의 최고 관직 중 하나인 집정관에 처음 취임했다. 이 집정관 재임 중 북이탈리아에서 리구리아인에게 승리하여 개선식을 거행하며 군사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245 BC원로원 의원으로 선출

파비우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긴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보수적 견해와 전통에 대한 존중으로 귀족 파벌에서 영향력을 얻었다. 이후 40년간 다양한 정치적 역할로 로마를 섬기게 되었다.

-255 BC첫 번째 군 복무

파비우스는 로마 군단에서 복무하며 군사 경력을 시작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기간 카르타고와의 전역에 참가하여 외적과의 전쟁에서 귀중한 경험을 쌓았고 군사 작전에서 인내의 중요성을 배웠다.

-265 BC정규 교육 시작

젊은 파비우스는 귀족에 걸맞은 전통적인 로마 교육을 받아 수사학, 법률, 그리스 철학, 군사 전술을 배웠다. 그의 스승들은 신중하고 주의 깊은 성격을 알아챘는데, 이것이 나중에 그의 군사 전략을 특징짓게 되었다.

-280 BC로마에서 출생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 가문 중 하나인 명문 파비우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베루코수스'(사마귀가 있는)라는 별명은 그의 윗입술에 있는 작은 사마귀에서 유래했다. 파비우스 가문은 로마를 위한 군사 복무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