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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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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고백록
신국론
기독교 신학의 확립

인생 여정

354북아프리카에서 출생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11월 13일 누미디아의 작은 로마 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 로마 관리였고,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365마다우로스에서 고전 교육 시작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근 도시 마다우로스로 보내져 라틴 문학, 수사학, 문법을 공부했다. 특히 베르길리우스의 라틴 문학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키웠다.

370카르타고에서 고등 교육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아프리카의 대도시 카르타고로 여행하여 수사학을 공부했다. 국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철학과 종교를 접했다.

371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 읽음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대화편 '호르텐시우스'를 접했다. 이 작품은 그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철학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일깨웠다.

372아들 아데오다투스 출생

아우구스티누스의 첩이 아들 아데오다투스('신의 선물'이라는 뜻)를 낳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을 깊이 사랑했다.

373마니교 수용

악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에 끌렸다. 그는 거의 9년간 마니교 공동체의 '청강자'로 남았다.

375사랑하는 친구의 죽음

어린 시절의 가까운 친구가 중병에 걸렸다가 세례를 받은 직후 사망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상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383로마에서 수사학 교수

카르타고의 무질서한 학생들에게 좌절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비밀리에 로마로 떠나 슬퍼하는 어머니를 남겼다.

384밀라노 황실 수사학 교수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의 황실 수사학 교수라는 명망 높은 자리를 얻었고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접촉하게 되었다.

385신플라톤주의와의 만남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누스와 포르피리오스의 저작을 발견했다. 신플라톤주의는 영적 현실을 이해하는 지적 도구를 제공했다.

386정원에서의 회심

386년 8월, 아우구스티누스는 '집어서 읽으라'고 노래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바울 서신을 열어 로마서 13:13-14를 읽자 의심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387성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받음

387년 부활절 전야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 아데오다투스, 친구 알리피우스와 함께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387오스티아에서 모니카의 죽음

오스티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모니카는 신비로운 환상을 함께 보았다. 며칠 후 모니카가 병들어 죽었고, 아들의 회심을 위한 평생의 기도가 마침내 응답받았다.

388아프리카로 귀환하여 수도원 설립

모니카의 죽음 후 아우구스티누스는 타가스테로 돌아가 기도와 학문에 전념하는 평신도 수도 공동체를 설립했다.

391의지에 반하여 사제 서품

히포 레기우스를 방문 중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중에게 붙잡혀 발레리우스 주교 앞으로 끌려가 즉석에서 서품받았다.

395히포의 주교로 성별됨

아우구스티누스는 히포 레기우스의 주교로 성별되었다. 그는 35년간 이 직위를 유지했다.

397고백록 집필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집필을 시작했다. 이것은 심리적 성찰의 선구자로서 문학에 혁명을 일으킨 자서전적 작품이다.

430반달족 포위 중 사망

아우구스티누스는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이 히포 레기우스를 포위하는 중에 사망했다. 그는 방대한 문학적 유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