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틸데: 왕국을 움직인 왕비. 클로비스가 개종하고, 프랑크인들이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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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클로틸드는 서기 474년경 부르군트 왕실의 공주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르군트인들의 왕 킬페리크 2세였다. 그녀는 가톨릭 기독교인으로 양육되었다.
클로틸드의 삼촌 군도바드가 그녀의 부모를 살해하고 어머니의 목에 돌을 묶어 익사시켰다. 그녀와 언니는 가족을 죽인 삼촌 밑에서 자랐다.
부모의 살인자 밑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클로틸드는 철저한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신앙은 그녀 삶의 목적의 중심이 될 것이었다.
클로틸드는 이교도인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 1세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부르군트와 프랑크의 이익을 통합했다. 그녀는 즉시 남편의 개종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클로틸드의 첫 아들 잉고메르는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곧 사망했다. 클로비스는 기독교의 신을 탓했지만 클로틸드는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클로틸드는 클로도메르를 낳았는데 그도 세례 후 병에 걸렸지만 회복되었다. 그녀는 클로비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전장에서 그리스도에게 드린 기도가 승리를 가져온 후 클로비스는 세례를 받기로 동의했다. 클로틸드의 인내심 있는 영향력이 프랑크 왕을 개종시키는 데 성공했다.
레미기우스 주교가 랭스에서 클로비스와 그의 전사 3,0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 사건은 프랑크족을 가톨릭 기독교와 연합시켜 유럽 역사를 형성했다.
클로틸드와 클로비스는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기부했다. 그녀는 교회의 후원자가 되어 왕국 전역의 선교 활동을 지원했다.
클로비스는 부분적으로 클로틸드의 부모를 복수하기 위해 부르군트의 군도바드와 전쟁을 벌였다. 군도바드는 패배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클로틸드는 수도원과 교회를 지원하며 종교적 후원을 계속했다. 프랑크 왕국은 그녀의 영향 아래 확고한 가톨릭 국가가 되었다.
클로비스가 사망하고 그의 왕국은 네 아들에게 분할되었다. 클로틸드는 성 마르틴의 무덤 근처에 살기 위해 투르로 이주했다.
클로틸드는 종교 활동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그녀는 파리에 사도 교회를 설립했다.
잔인한 권력 투쟁에서 클로틸드의 아들들 클로타르와 킬데베르트가 그녀의 손자들을 살해했다. 그녀는 그들을 구하려 했지만 실패하여 깊은 슬픔을 경험했다.
클로틸드는 다투는 아들들 사이를 중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자녀들 사이의 폭력은 그녀의 말년에 큰 고통을 주었다.
클로틸드의 아들들이 마침내 부르군트를 정복하여 그녀의 부모의 살해를 복수했다. 그녀 가족의 비극을 목격한 왕국은 프랑크 영토로 흡수되었다.
클로틸드는 투르에서 기도와 자선 활동으로 말년을 보냈다. 그녀는 경건함과 고난으로 존경받았다.
클로틸드는 545년 6월 3일 사망하여 파리의 사도 교회에서 클로비스 곁에 묻혔다. 그녀는 나중에 신부와 과부의 수호성인인 성 클로틸드로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