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차대전 전략가. 장군의 도박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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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에리히 프리드리히 빌헬름 루덴도르프는 프로이센 포젠 주의 마을 크루셰브니아에서 아우구스트 빌헬름 루덴도르프와 클라라 자네트 헨리에테 폰 템펠호프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덴도르프는 베를린의 프로이센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시작하여 미래 군사 경력의 기초를 다졌다.
루덴도르프는 프로이센 육군사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제57보병연대의 소위로 임관되었다.
루덴도르프는 승진하여 프로이센 참모본부에 합류했으며 그곳에서 군사 계획과 전략 업무를 수행했다.
루덴도르프는 포젠에서 열린 의식에서 교사인 마르가레테 슈뢰더와 결혼했다. 그들은 함께 네 자녀를 두게 된다.
루덴도르프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참모본부에서 군사 개혁과 전략 계획에 집중하며 업무를 계속했다.
루덴도르프는 기병 전술과 군사 개혁을 논의하는 첫 번째 책 안장 위에서를 출판했다.
루덴도르프는 대령으로 진급하고 참모본부에서 영향력 있는 역할을 계속하며 군사 전략 발전에 기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루덴도르프는 벨기에 리에주 점령 임무를 맡은 제2군의 병참감으로 임명되었다.
루덴도르프는 제1병참총감으로 임명되어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함께 독일 최고사령부의 사실상 공동 지도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루덴도르프는 최고사령부 직위에서 사임하고 스웨덴으로 일시적 망명을 떠났다.
루덴도르프는 독일로 돌아와 우익 정치 운동에 관여하며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를 옹호했다.
루덴도르프는 뮌헨에서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실패한 시도인 맥주홀 폭동에 아돌프 히틀러와 함께 참여했다.
루덴도르프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 의원으로 독일 제국의회에 선출되었다.
루덴도르프는 전쟁 수행과 국가 자원 동원에 관한 그의 이론을 개괄하는 책 총력전을 출판했다.
루덴도르프는 거의 40년간의 결혼 생활 후 아내 마르가레테 슈뢰더와 이혼했다. 그는 나중에 마틸데 폰 켐니츠와 재혼했다.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72세의 나이로 독일 뮌헨에서 사망하여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인으로서의 유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