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의 영웅: 밀티아데스가 그리스를 구하고, 페르시아 침공을 분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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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밀티아데스는 아테네에서 가장 저명한 귀족 가문 중 하나인 부유하고 강력한 필라이드 씨족에서 태어났다.
밀티아데스는 삼촌이자 동명인의 뒤를 이어 참주로서 트라키아 케르소네소스(현대 갈리폴리 반도)를 통치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밀티아데스는 아테네를 위해 렘노스와 임브로스 섬을 정복하여 북부 에게해에서 아테네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페르시아 속국으로서 밀티아데스는 다리우스 1세의 스키타이 원정에 참여하여 다뉴브강 위의 다리를 지켰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밀티아데스는 다리우스를 스키타이에 가두기 위해 다리를 파괴할 것을 제안했지만 다른 참주들이 거부했다.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 지배에 대한 이오니아 그리스인의 반란을 비밀리에 지원하여 페르시아 제국과의 결별을 알렸다.
페르시아가 이오니아 반란을 진압하자 밀티아데스는 케르소네소스에서 아테네로 도피하여 간신히 포로를 피하고 재산을 가져왔다.
밀티아데스는 케르소네소스에서의 참주 행위로 재판에 직면했지만 무죄 판결을 받고 민주주의 아테네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밀티아데스는 아테네의 스트라테고스(장군)로 선출되어 아테네 군사력을 이끌기 위해 매년 선출되는 10명의 지휘관 중 한 명이 되었다.
페르시아가 침략했을 때 밀티아데스는 전쟁 회의와 폴레마르코스 칼리마코스를 설득하여 성벽을 방어하는 대신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과 교전하게 했다.
밀티아데스는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전투 중 하나인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한 아테네군을 지휘했다. 그리스군은 192명을 잃은 반면 페르시아군은 6,400명을 잃었다.
마라톤 이후 밀티아데스는 아테네에서 가장 칭송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그리스의 자유와 폭정에 대한 승리의 동의어가 되었다.
밀티아데스는 아테네를 설득하여 파로스를 공격할 함대를 얻었다. 포위는 실패했고 밀티아데스는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밀티아데스는 파로스 원정에 대해 아테네를 오도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부상이 너무 심해 말할 수 없어 재판에서 들것에 누워 있었다.
유죄 판결을 받은 밀티아데스는 파로스 원정 비용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인 50탈란트를 지불하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감당할 수 없었다.
밀티아데스는 벌금을 내기 전에 상처로 인한 괴저로 감옥에서 사망했다. 아들 키몬이 나중에 벌금을 내고 그의 유산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