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힘을 재건하고 여러 제국을 무너뜨린 무자비한 군사 천재로, 멈추지 않는 야망으로 격변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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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사파비 왕조 치하 호라산의 다스트게르드 근처에서 가난한 아프샤르계 투르크멘 가문에서 나디르 콜리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빈곤과 습격, 국경지대의 불안은 그의 강인함과 권력에 대한 갈망을 빚어냈다.
십대 시절 그는 우즈베크와 투르크멘의 습격이 잦았던 이란 북동부의 잔혹한 불안정 속을 통과했다. 유랑과 폭력의 경험은 생존을 위해 병사가 되고 무리를 이끄는 길로 그를 몰아갔다.
약탈과 지역 보호 거래를 통해 추종자를 모으고, 작은 무리를 규율 있는 전력으로 바꾸었다. 분열된 호라산의 정치 속에서 충성에는 보상을, 배신에는 처벌을 내리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넓혔다.
호타크 아프가니가 이스파한을 점령하고 술탄 후세인 샤를 몰아내자 이란은 여러 경쟁 세력으로 쪼개졌다. 위기는 나디르 같은 야심가들이 질서의 회복자를 자처할 공간을 열어 주었다.
나디르는 사파비의 옹립자 타흐마스프 2세에게 군사적 봉사를 제안하며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겠다고 약속했다. 연전연승으로 그는 곧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고, 실권은 궁정에서 전장으로 이동했다.
아슈라프 호타크의 군대와 벌인 주요 전투들에서 나디르의 규율 있는 보병과 포병이 아프가니의 지배를 무너뜨렸다. 이스파한의 탈환은 사파비의 위신을 되살렸고, 나디르의 명성은 이란 엘리트 사이에서 치솟았다.
이란의 혼란기에 오스만이 점령한 영토를 되찾기 위해 서쪽으로 진군하며 속도와 공성술을 중시했다. 이 전쟁들은 그의 군대를 국가의 전문 도구로 단련시켰고, 지역 전역에 공포를 심었다.
타흐마스프 2세가 실패한 작전 뒤 불리한 합의를 받아들이자, 나디르는 그 스캔들을 이용해 그를 몰아냈다. 그는 어린 아바스 3세를 옹립하고 섭정으로 군림하며 사파비 왕조를 사실상 배제했다.
나디르 군은 바그다드 주변을 포함한 이라크에서 오스만 지휘관들과 견고한 수비대에 맞서 공방을 벌였다. 지형과 질병이 병력을 갉아먹는 상황에서도, 원정은 그의 보급 능력과 포병 운용을 드러냈다.
그는 예게바르드 근처에서 오스만 군을 격파하며 아르메니아와 코카서스에서 이란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승리는 강대한 이웃으로부터 이란을 지킬 수 있는 지도자는 오직 자신뿐이라는 주장을 강화했다.
외교와 압박을 통해 그는 사파비의 약세기에 러시아가 차지했던 핵심 카스피 해 연안 거점을 반환하도록 만들었다. 합의는 위험한 북방 전선을 줄이고 더 큰 야망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게 했다.
무간 초원에서 지휘관과 유력자들이 모인 대회에서 그는 나디르 샤로서 왕관을 받아들였다. 이 의식은 사파비 통치의 종식을 공식화했고, 정통성을 군사적 성공과 질서의 회복에 결부시켰다.
그는 칸다하르를 포위하고 공병과 포병, 끊임없는 돌격으로 격렬한 저항을 뚫어냈다. 요새를 확보하면서 무굴 국경으로 가는 길이 열렸고, 성과를 위해 인명을 아끼지 않는 그의 성향이 드러났다.
인더스 강을 건너 그는 카르날 전투에서 무굴 군을 궤멸시키고 황제 무함마드 샤의 항복을 받아냈다. 승리는 무굴의 쇠락을 드러내고, 이란을 코카서스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지배적 강국으로 세웠다.
델리에서 소요가 일어난 뒤 그의 군대는 잔혹한 약탈을 벌였고, 그는 공작 왕좌와 코히누르 다이아몬드를 포함한 막대한 부를 거두어 갔다. 전리품은 군대를 유지하는 자금이 되었지만, 통치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더욱 키웠다.
이란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가혹한 보복과 처형, 끊임없는 세수 요구로 지속적인 원정을 떠받쳤다. 그의 통치는 질서 회복의 영웅담에서 강압으로 이동했고, 많은 옛 지지자들을 소외시켰다.
그는 종교적·정치적 양보를 얻어내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다시 열고 국경 요새들을 거세게 압박했다. 장기전은 이란의 재정을 소진시켰고, 장군과 지방 지도자들에 대한 그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수년간의 막대한 전쟁 비용 끝에 평화 합의가 성립되어 오스만과의 국경이 안정되고 당장의 군사적 압박이 완화되었다. 그럼에도 내부의 편집증과 가혹한 통치는 계속되어 국내 결속은 흔들렸다.
쿠찬 근처의 군영에서, 추가 숙청과 처벌을 두려워한 내부 공모자들이 그를 살해했다. 그의 죽음은 아프샤르 왕조의 급속한 분열을 촉발했고, 지역 권력 투쟁이 다시 격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