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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 15세 카이사리온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카이사리온

파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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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왕 중의 왕 칭호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일하게 알려진 친아들로, 그의 비극적인 운명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이집트 독립의 종말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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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47 BC알렉산드리아에서 탄생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카이사리온은 클레오파트라 7세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탄생은 두 강대국—이집트와 로마—의 결합을 상징했으며, 그는 카이사르의 유일하게 알려진 친아들이었습니다.

46 BC로마로의 여행

어린 카이사리온은 어머니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로마로 여행하여 카이사르의 별장에 손님으로 머물렀습니다. 카이사르가 이미 칼푸르니아와 결혼한 상태였기에, 로마에서 그들의 존재는 논란이 되었습니다.

45 BC카이사르의 별장에서의 생활

카이사리온은 아버지 율리우스 카이사르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로마법은 외국과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의 지위는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44 BC아버지의 암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3월의 이데스에 암살당했습니다. 3세의 카이사리온과 어머니 클레오파트라는 즉시 로마를 탈출했고, 강력한 후원자를 잃어 입지가 불안해졌습니다.

44 BC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되다

프톨레마이오스 14세의 사망 후, 클레오파트라는 3세 아들 카이사리온을 프톨레마이오스 15세로서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이집트 왕이 되었지만, 실권은 어머니가 쥐고 있었습니다.

43 BC왕실 교육 시작

어린 파라오는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이집트 왕족에 걸맞은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 문학, 이집트 종교를 배우고, 왕의 의무에 대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41 BC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도착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타르수스로 소환하여 유명한 로맨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카이사리온은 안토니우스가 어머니의 파트너이자 동맹이 되면서 새로운 의붓아버지 같은 존재를 얻었습니다.

40 BC이복 형제자매의 탄생

클레오파트라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사이에서 쌍둥이—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를 낳았습니다. 카이사리온에게 이복 형제자매가 생겼지만, 카이사르의 아들로서 후계자 지위는 유지되었습니다.

37 BC안토니우스의 이집트 귀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이집트로 돌아와 이집트식 의식으로 클레오파트라와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카이사리온은 어머니의 정치적 동맹이 이 결합으로 강화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36 BC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의 탄생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또 다른 이복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가 태어났습니다. 성장하는 왕실 가족은 클레오파트라의 이집트 제국 부흥 비전을 구현했습니다.

34 BC알렉산드리아 증여

성대한 의식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리온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적법한 아들로 선언하고 '왕 중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는 이집트와 키프로스의 명목상 통치권을 부여받았고, 이복 형제자매들에게는 다른 영토가 주어졌습니다.

34 BC'왕 중의 왕'으로 선포됨

13세의 카이사리온은 알렉산드리아 증여에서 '왕 중의 왕'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의식은 로마를 격분시켰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전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33 BC왕실 훈련 계속

카이사리온은 통치와 군사에 관한 교육을 계속했습니다. 로마와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어머니는 그가 단독으로 통치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32 BC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선전포고

옥타비아누스는 특별히 클레오파트라에게 선전포고를 하여, 로마 내전이 아닌 외국 여왕과의 분쟁으로 틀을 잡았습니다. 카이사리온의 운명은 어머니의 투쟁과 불가분하게 얽히게 되었습니다.

31 BC악티움 해전

악티움 해전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결정적인 패배로 끝났습니다. 카이사리온의 가족은 권력 유지의 희망이 무너지는 가운데 이집트로 도망쳤습니다.

30 BC안전한 곳으로 보내짐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를 침공하자, 클레오파트라는 가정교사 로돈과 보물과 함께 카이사리온을 남쪽 에티오피아 방면으로 보내, 아들의 탈출로 왕조를 보존하려 했습니다.

30 BC부모님의 죽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 사망의 거짓 소식을 듣고 자결했습니다. 얼마 후 클레오파트라 자신도 사망했습니다(전통적으로 독사에 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카이사리온은 홀로 남아 옥타비아누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30 BC옥타비아누스의 명령으로 처형됨

카이사리온은 가정교사의 배신과 안전에 대한 거짓 약속에 속아 알렉산드리아로 유인당했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명령으로 처형되었으며, 조언자 아리우스는 '카이사르가 너무 많은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죽음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종말을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