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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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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성격

간략 정보

셀레우코스 제국 건설
바빌론 점령
인도와 평화 체결

알렉산드로스의 호위병에서 아나톨리아에서 인도까지 뻗친 제국의 지배자로. 인내와 타이밍이 무력으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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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358 BC마케도니아 귀족 가문에서 출생

셀레우코스는 마케도니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안티오코스는 필리포스 2세 휘하의 장군이었다. 상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배경은 그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가장 유능한 지휘관들을 배출한 무사 귀족 계층에 위치시켰다.

346 BC필리포스 2세 궁정에서 왕실 시종으로 훈련받음

어린 셀레우코스는 다른 귀족 청년들과 함께 마케도니아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다. 군사 전술, 그리스 문학, 통치술을 배웠으며, 이는 수십 년 후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334 BC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제국 침공에 참가

셀레우코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군대의 지휘관으로 아시아로 건너갔다. 아직 최고위 장군은 아니었지만,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고대 세계를 재편한 원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331 BC가우가멜라 전투에 참전

셀레우코스는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3세에 대한 알렉산드로스의 결정적 승리에 참가했다. 이 전투는 사실상 페르시아 제국을 종식시키고 모든 아시아를 마케도니아 정복에 개방했으며, 이 영토들은 후에 셀레우코스의 것이 되었다.

328 BC정예 히파스피스타이 지휘관으로 임명됨

알렉산드로스는 셀레우코스를 정예 보병 근위대 히파스피스타이의 지휘관으로 승진시켰다. 이 명예로운 직위는 그를 알렉산드로스의 측근으로 만들었고, 혹독한 중앙아시아 원정에서 군사적 능력을 보여줄 기회를 주었다.

324 BC수사 집단 결혼식에서 아파마와 결혼

알렉산드로스의 명령으로 셀레우코스는 박트리아 군벌 스피타메네스의 딸 아파마와 결혼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페르시아인 아내를 이혼한 다른 장군들과 달리, 셀레우코스는 아파마와의 결혼을 유지했고, 그녀는 후계자 안티오코스를 낳았다.

323 BC알렉산드로스 사망, 디아도코이 전쟁 시작

바빌론에서 알렉산드로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장군들 사이에 수십 년간의 전쟁을 촉발했다. 셀레우코스는 초기 영토 분할에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정예 헤타이로이 기병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미래 권력의 발판을 마련했다.

320 BC바빌론 태수가 됨

트리파라디수스에서의 영토 재분배에서 셀레우코스는 부유한 바빌론 태수령을 얻었다. 고대 교역로의 교차점에 위치한 이 전략적 지방은 그의 미래 제국의 기반이 되었다.

316 BC안티고노스의 군대를 피해 바빌론을 탈출

강력한 안티고노스가 복종을 요구하자, 셀레우코스는 거부하고 이집트로 도망쳐 프톨레마이오스의 반안티고노스 동맹에 합류했다. 이 일시적 망명은 동맹의 중요성과 권력 투쟁에서 인내의 필요성을 그에게 가르쳤다.

312 BC소수의 병력으로 바빌론을 재정복

셀레우코스는 소규모 군대만으로 안티고노스의 수비대로부터 바빌론을 훌륭하게 탈환했다. 이 극적인 귀환은 셀레우코스 기원의 시작을 알렸고, 이 역법 체계는 그의 제국에서 수세기 동안 사용되었다.

308 BC동쪽으로 확장하여 중앙아시아 영토를 정복

셀레우코스는 동부 지방들로 원정을 개시하여 박트리아, 소그디아나, 인더스 강에 이르는 영토에 대한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재확립했다. 동방 정복은 중요한 자원을 확보하고 위대한 정복자로서의 명성을 확립했다.

305 BC왕의 칭호 바실레우스를 칭함

다른 디아도코이들을 따라 셀레우코스는 스스로 왕을 선언하고 바실레우스 칭호를 취했다. 그의 왕국은 이제 시리아에서 인도까지 뻗어 있었고, 계승자 왕국들 중 가장 컸으며 알렉산드로스의 아시아 정복 대부분을 계승했다.

303 BC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와 조약 체결

셀레우코스는 인도 황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와 조약을 체결하여 동부 영토를 500마리의 전쟁 코끼리와 교환으로 양도했다. 이 코끼리들은 그의 미래 전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고, 조약은 인도와의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왔다.

301 BC입수스 전투에서 승리

셀레우코스의 전쟁 코끼리들은 입수스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고, 연합군은 안티고노스를 격파하고 살해했다. 이 전투는 안티고노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을 재통일할 위협을 종식시키고 셀레우코스를 아시아의 지배적 세력으로 확립했다.

298 BC새로운 서부 수도로 안티오키아를 건설

셀레우코스는 오론테스 강변에 안티오키아를 건설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이 도시는 헬레니즘 문명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고, 결국 알렉산드리아에 필적하며 수세기 동안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로 기능했다.

291 BC아들 안티오코스 1세를 공동 통치자로 세움

셀레우코스는 아들 안티오코스를 동부 지방들의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여 안정적인 계승을 보장했다. 또한 젊은 아내 스트라토니케를 안티오코스에게 주어 헬레니즘 왕국의 특징인 왕조 결혼 패턴을 확립했다.

283 BC코루페디온 전투에서 리시마코스를 격파

75세의 셀레우코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코루페디온에서 리시마코스를 격파했다. 이것은 디아도코이들 사이의 마지막 대전투였다. 이 승리로 소아시아를 장악하고 알렉산드로스의 장군들 중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다.

281 BC유럽으로 건너가는 도중 암살당함

마케도니아 본토를 차지하려고 건너가던 중, 셀레우코스는 자신이 보호해주었던 망명자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에게 암살당했다. 알렉산드로스 계승자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 쓰러졌으며, 에게해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뻗어 있는 제국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