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처음 본 유럽인. 바다에 들어가 대양의 소유권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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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는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의 헤레스 데 로스 카바예로스에서 귀족이지만 가난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발보아는 당시 젊은 귀족들에게 전형적인 군사 기술과 항해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았다.
발보아는 로드리고 데 바스티다스의 원정에 합류하여 남아메리카 북부 해안과 카리브 제도를 탐험했다.
원정 후 발보아는 히스파니올라의 산토도밍고에 정착하여 농사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채권자들을 피하기 위해 발보아는 파나마 지협의 다리엔 지역으로 향하는 배에 밀항했다.
발보아와 마르틴 페르난데스 데 엔시소는 아메리카 본토 최초의 영구적인 유럽 정착지인 산타 마리아 라 안티구아 델 다리엔을 건설했다.
발보아는 다리엔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이 지역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공고히 했다.
발보아는 진주 제도로 원정을 이끌어 진주와 금을 획득하여 명성을 더욱 높였다.
발보아는 파나마 지협을 횡단하는 원정을 이끌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평양을 본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성공적인 태평양 원정 후 발보아는 산타 마리아 라 안티구아로 돌아와 추가 탐험을 계획했다.
발보아는 스페인 귀족 여성 마리아 데 페냘로사와 결혼하여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공고히 했다.
발보아는 태평양 해안을 탐험하고 더 많은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원정 준비를 시작했다.
발보아와 새 총독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의 관계가 악화되어 정치적 긴장과 고발로 이어졌다.
발보아는 총독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에 대한 반역과 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는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의 명령으로 아클라에서 참수형으로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경력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