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림화산의 깃발을 내건 가이의 호랑이. 손자병법을 체현하며 뛰어난 기마 전술과 전략으로 일본 통일에 다가간 전설적인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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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다케다 하루노부(후에 신겐으로 알려짐)는 다케다 씨 제18대 당주 다케다 노부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난세에 태어난 그는 일본 최대의 무장 중 한 명, 가이의 호랑이가 될 운명이었다.
하루노부는 원복식(겐푸쿠)을 거행하고 성인명 하루노부를 받았다. 하루 자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에게서 받은 것으로, 무사로서의 공식적인 출발을 의미했다.
극적인 쿠데타로 하루노부는 가신들의 지지를 받아 아버지 노부토라를 스루가국으로 추방했다. 이 대담한 행동으로 다케다 씨 제19대 당주가 되어 전설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겐은 시나노국의 체계적인 정복을 시작하여 수십 년에 걸친 군사 작전이 시작되었다. 혁신적인 전술과 뛰어난 전략이 발휘되어 지방 영주들을 하나씩 격파했다.
신겐은 무라카미 요시키요에게 첫 번째 대패를 당했다. 신뢰하는 가신 이타가키 노부카타와 아마리 도라야스가 전사했다. 이 굴욕적인 경험에서 전쟁의 신중함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에스기 겐신과의 다섯 차례 전설적인 전투 중 첫 번째가 시작되었다. 가이의 호랑이와 에치고의 용의 싸움은 사무라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하루노부는 출가하여 진정한 근원을 의미하는 법명 신겐을 취했다. 승려가 되었음에도 군사 작전을 계속하여 이 시대의 승병 전통을 체현했다.
다섯 차례 전투 중 가장 치열한 싸움으로, 신겐과 겐신의 일기토 전설이 탄생했다. 겐신이 신겐의 본진에 돌입했을 때, 신겐은 군배로 검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우에스기 겐신과의 마지막 대결은 결착이 나지 않았다. 어느 무장도 숙적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둘 다 그 장렬한 싸움으로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이마가와 씨의 쇠퇴 후, 신겐은 동맹을 파기하고 스루가국을 침공했다. 이 적극적인 확장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및 호조 씨와의 대립이 생겨 지역 정치가 재편되었다.
신겐은 호조 씨에 대한 대담한 원정을 감행하여 오다와라 성에 다가갔다.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했지만, 다케다의 군사력이 본국을 훨씬 넘어 미치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겐의 딸은 노부나가의 아들에게 시집갔지만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 동맹의 파탄이 노부나가의 동맹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신겐 최후의 원정 무대를 마련했다.
신겐은 교토를 목표로 일본 통일까지 시야에 넣은 야심찬 서상 작전을 개시했다. 3만 군세를 이끌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로 진군했으나 이것이 마지막 원정이 되었다.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완패시켜 이에야스는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다케다 기마대는 도쿠가와-오다 연합군을 궤멸시켜 이에야스에게 가장 굴욕적인 패배가 되었다.
노다 성 공격 중 신겐은 저격에 의한 총상을 입었거나 중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것이 마지막 공성전이 되었고, 원정 중 그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다케다 신겐은 서상 작전에서 철수 중 사망했다. 사인은 병, 오래된 상처, 또는 암살로도 알려져 있다. 마지막 말로 3년간 죽음을 숨기라고 명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죽음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부상을 막을 자가 없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