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프리츠. 전쟁과 계몽 통치로 프로이센을 대국으로 만든 철학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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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프리드리히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왕과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엄격한 군사 교육이 그의 고난에 찬 청년기를 형성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아들에게 엄격한 군사 훈련을 부과했다. 프리드리히는 아버지의 뜻에 반해 비밀리에 음악, 철학, 프랑스 문학을 추구했다.
프리드리히는 친구 한스 헤르만 폰 카테와 영국으로 도주하려 했다. 그들은 체포되었고, 카테는 벌로 프리드리히 눈앞에서 처형되었다.
프리드리히는 정략결혼으로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와 결혼했다. 결혼은 불행했고 자녀도 없었지만, 엘리자베트는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라인스베르크 성에 문화 살롱을 만들어 철학자, 음악가, 작가를 모았다. 볼테르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하고 플루트 곡을 작곡했다.
아버지 사망 후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 왕이 되었다. 고문 폐지와 종교적 관용 보장 등 계몽 개혁을 즉시 시행했다.
프리드리히는 오스트리아령 슐레지엔을 침공하여 이 부유한 주를 차지하기 위한 세 차례 전쟁을 시작했다. 그의 뛰어난 전술이 프로이센을 유럽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오스트리아가 슐레지엔 탈환 준비를 하자 프리드리히는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의 승리는 그의 성장하는 군사적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프리드리히는 사랑하는 여름 궁전 상수시를 로코코 양식으로 완성했다. 이곳은 철학, 음악, 지적 추구를 위한 은신처가 되었다.
프리드리히는 작센에 선제공격을 가해 유럽 최초의 세계대전을 시작했다. 적에게 둘러싸인 그는 프로이센의 생존을 위해 7년간 싸우게 된다.
두 번의 걸작 같은 전투에서 프리드리히는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군대를 격파했다. 이 승리들은 오늘날에도 사관학교에서 연구된다.
프리드리히는 슐레지엔을 확보하고 프로이센은 강대국으로 인정받았다. 유럽 최강 제국들의 연합에 맞서 생존한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함께 폴란드를 분할하여 서프로이센을 획득했다. 이로써 브란덴부르크와 동프로이센이 연결되어 영토가 크게 확대되었다.
프리드리히는 계몽 전제주의 철학을 명확히 하며 왕은 국가의 첫 번째 종복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사상은 여러 세대의 정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상수시의 안락의자에서 사망했다. 군사적 천재성과 계몽 개혁을 통해 프로이센을 작은 왕국에서 유럽 강대국으로 변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