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붉은 악마’ 사무라이 지휘관으로, 인질로 보낸 어린 시절을 딛고 일어나 도쿠가와 세력을 결정적으로 떠받친 무장 겸 다이묘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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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도토미 지방에서 이이 가문으로 태어났고, 지역 정세가 끊임없는 전쟁으로 무너져 내리는 시기였다. 어린 시절은 이마가와 세력의 쇠퇴와 도쿠가와·다케다·오다 세력 간 경쟁의 격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아버지 나오치카는 도토미에서 이마가와 권위와 얽힌 음모와 변덕스러운 동맹 관계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결과 어린 후계자는 노출된 처지가 되었고, 친족들은 적과 정치적 숙청을 피해 그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마가와와 결별하자 이이 집안은 보복과 내부 혼란에 직면했다. 보호자들은 그를 여러 은신처로 옮기며 지역 동맹과 사찰 인맥을 활용해 체포를 피했다.
젊은 시종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곁에 들어가 용맹과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에야스는 도토미에서의 이이 가문 전통을 중시하며 그를 충성심 강한 지휘관으로 길러냈다.
장비와 초기 봉록을 하사받은 뒤 도쿠가와 영지를 압박하던 경쟁 세력과의 국경 분쟁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습격과 방어 전투에서의 성과로 상급 가신과 현장 지휘관들의 신뢰를 얻었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정국이 급변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워졌다. 그는 긴급 동원과 이동 경로의 안전 확보를 지원하며, 이에야스가 위기를 돌파하고 포위를 피하도록 뒷받침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오다 연합이 충돌한 전쟁에서 고마키와 나가쿠테 작전에 공격적으로 임했다. 기습과 추격 중심의 충격 전술로 교섭에서 도쿠가와가 주도권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부하들에게 붉은 옻칠 갑옷 양식을 널리 적용해, 위압과 규율을 상징하는 통일된 전장 이미지를 만들었다. ‘붉은 악마’라는 평판은 빠르게 퍼졌고, 적은 붉은 대오의 출현만으로도 그가 왔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오다와라 공성전에서 도쿠가와 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해 호조 세력의 최종 붕괴에 힘을 보탰다. 이 전역은 동국의 권력 구도를 재편했고, 관동에서 도쿠가와의 확장 기반을 마련했다.
호조 멸망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관동으로 옮겨가자, 그는 신임받는 가신으로서 넓은 영지를 받았다. 가신단을 정비하고 행정 체계를 다지며, 새 중심지로 떠오르던 에도 인근의 요충로를 확보했다.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천하는 흔들렸고, 이에야스를 비롯한 섭정들이 후계 문제를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전력 태세를 강화하고 도쿠가와의 다른 지휘관들과 공조하며, 서쪽 진영의 결집을 주시했다.
전면 충돌로 치닫는 가운데 적 진영의 거점을 공략해 사와야마 성을 점령하고, 서쪽 군의 연락과 보급 흐름을 약화시켰다. 이 승리는 도쿠가와 측의 기세를 보여 주었고, 훗날 히코네 핵심권의 요충을 확보하는 의미를 가졌다.
세키가하라에서 도쿠가와 군의 전위로 두드러진 선봉을 맡아 공격을 밀어붙이며 적 진영의 결속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그는 전투 중 중상을 입었지만, 그 희생은 도쿠가와 군의 ‘붉은 악마’로서 명성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승리 후 비와호 인근의 가치 높은 지역을 하사받아 교토로 향하는 길목과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행정 조직을 재편하고 성과 성하 마을의 계획을 추진해 장기 지배의 기반을 마련했다.
1600년의 부상과 전장 고난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는 오랜 병세 끝에 세상을 떠나, 눈부신 경력은 짧게 막을 내렸다. 후계자와 가신단은 그의 정책을 계승했고, 가문은 도쿠가와 통치의 핵심 축으로 남았다.
사후에도 가신들은 붉은 갑옷 전통과 엄격한 무풍을 가문의 상징으로 지켜 나갔다. 히코네의 이이 가문은 에도 초기의 유력 영주로 성장해 중앙의 주요 길목을 지키고 정치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