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황금 황제. 제국을 확장하고 "선량한 요한네스" 칭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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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요한 2세 콤네노스는 알렉시오스 1세 황제와 이레네 두카이나 황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형이 사망한 후 후계자가 되었다.
요한은 공식적으로 왕위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어머니 이레네는 누나 안나를 선호했지만 알렉시오스는 요한을 선택했다.
요한은 헝가리 왕 라디슬라우스 1세의 딸 피로슈카와 결혼했다. 그녀는 이레네라는 이름을 취하고 헌신적인 아내임을 증명했다.
요한은 아버지 알렉시오스 1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누나 안나 콤네네는 남편 니케포로스 브리엔니오스를 왕위에 앉히려 음모를 꾸몄다.
요한은 누나 안나의 음모를 발각하고 그녀를 수녀원으로 추방했다. 그는 음모자들을 처형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었다.
요한은 발칸을 위협하는 페체네그 약탈자들에 대한 결정적인 캠페인을 이끌었다. 그의 승리는 페체네그 위협을 영구적으로 제거했다.
요한은 베로이아 전투에서 페체네그를 격파했다. 생존자들은 제국 내에서 군사 식민지로 정착되었다.
요한은 노르만 시칠리아에 대항하여 독일 황제 로타르 3세와 동맹을 맺었다. 남부 이탈리아에 대한 비잔틴의 주장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
요한은 아르메니아 공작들로부터 킬리키아를 회복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이 지역에 대한 제국의 권위를 회복했다.
요한은 안티오키아 공국이 비잔틴 종주권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 레몽 공은 경의를 표하도록 강요받았다.
요한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무슬림 시리아로 진군했다. 그는 샤이자르를 포위했지만 십자군의 협력 없이는 점령할 수 없었다.
요한의 장남이자 공동 황제인 알렉시오스가 캠페인 중 열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황제에게 심각한 타격이었다.
요한은 동부 아나톨리아의 다니슈멘드 투르크에 대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여러 요새를 회복하고 국경을 확장했다.
요한은 안티오키아에 대한 비잔틴의 주장을 강제하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도시를 제국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요한은 사냥 중 독화살에 실수로 베여 사망했다. 그는 막내아들 마누엘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요한은 콤네노스 왕조의 가장 위대한 황제로 여겨졌다. 그는 군사적 승리와 현명한 통치를 통해 비잔틴의 위신을 회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