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전쟁 군주로서 초원 세력들을 분쇄하고, 끊임없는 원정과 대담한 외교로 동유럽의 판도를 다시 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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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키이우의 이고르와 키이우의 올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발트에서 흑해로 이어지는 강 교역을 장악한 왕조의 후계자였다. 그의 유년기는 드니프로 유역에서 초원 민족과 거대 제국 상인들 사이의 동맹이 흔들리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공물을 거두던 이고르 공이 이스코로스텐 근처에서 드레블랴네에게 살해된 뒤, 어린 스뱌토슬라프는 이름뿐인 군주가 되었다. 어머니 올가는 섭정으로서 키이우를 안정시키고 공물 징수 체계를 재편해 재반란을 막았다.
섭정 올가는 계산된 보복으로 드레블랴네 지도층을 짓밟고 이스코로스텐을 파괴하며 지역 통제를 강화했다. 이 사건은 스뱌토슬라프에게 루스의 권위가 무력, 인질, 그리고 안정적인 공물 노선에 달려 있음을 각인시켰다.
올가는 콘스탄티누스 7세의 궁정을 찾아 세례를 받고 외교적 이익과 교역 안전을 도모했다. 스뱌토슬라프는 개종을 거부하고 전사 숭배와 초원식 관습을 유지하며 친위 전사단과 유목 동맹에 더 가까이 섰다.
키이우에서 실권을 쥐자 그는 궁정 의례보다 원정을 중시하며 병사들과 함께 소박하게 생활했다. 강 회랑과 공물을 바치는 부족을 장악하는 데 집중해 키예프 루스를 더 공격적인 대외 국가로 바꾸었다.
그는 오카와 볼가를 따라 원정을 벌여 스칸디나비아와 이슬람 세계 사이 교역에 세금을 매기던 경쟁 세력을 약화시켰다. 이는 중개 국가들을 무너뜨리고 상업과 공물을 직접 통제하려는 전략적 전환을 드러냈다.
빠르게 이동하는 병력으로 국경을 강타해 돈 강의 운송로를 지키는 핵심 요새 사르켈을 빼앗았다. 그 지배를 해체함으로써 루스의 영향력은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초원은 새로운 약탈자들에게 더 노출되었다.
볼가 상류로 계속 진군해 이슬람 시장과 북방 모피 교역에 연결된 부유한 중심지 볼가 불가리아를 공격했다. 이 원정은 이익을 루스로 돌리고 적들이 키이우에 맞선 동맹을 자금으로 꾸리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는 초원 깊숙이 파고들어 볼가의 이틸과 카스피해 근처의 사만다르를 점령하며 제국의 정치 중심을 산산이 부쉈다. 그 붕괴는 유라시아의 균형을 바꿔 루스 변방에서는 페체네그 등 유목 세력이 힘을 얻게 했다.
황제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는 불가리아에 압박을 가하려 했고, 선물과 약속으로 루스의 개입을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뱌토슬라프는 도나우를 건너 불가리아군을 격파하고 요새들을 빠르게 장악해 프레슬라프와 콘스탄티노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가 발칸에서 원정하던 사이 페체네그 기마병이 키이우를 포위해 어머니 올가와 어린 아들들을 위협했다. 스뱌토슬라프는 신속히 귀환해 공격자들을 물리쳤고, 과도하게 전선을 넓힌 공격이 초원 정치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음을 드러냈다.
올가가 죽은 뒤 그는 야로폴크를 키이우에, 올레그를 드레블랴네 지역에, 블라디미르를 노브고로드에 두어 나라를 붙잡아 두려 했다. 그 뒤 그는 발칸 중심지가 그리스인, 슬라브인, 초원을 잇는 교역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도나우 야망을 다시 추구했다.
스뱌토슬라프는 페레야슬라베츠에 거점을 세우고 거대 제국, 헝가리, 루스의 물자가 모이는 중심지로 만들려 했다. 그의 존재는 불가리아를 불안하게 하고, 발칸 접근로 가까이에 강력한 루스 군대가 자리한 상황을 두려워한 콘스탄티노폴을 떨게 했다.
황제 요안 1세 치미스케스는 불가리아로 진군해 루스 군을 격파하고 도나우의 도로스톨론에서 스뱌토슬라프를 가뒀다. 격전과 보급난 끝에 그는 조약에 동의해 발칸에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해상로를 통한 안전한 철수를 보장받았다.
흑해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 그의 병력은 드니프로 급류 부근에서 페체네그의 매복을 받았고, 쿠랴 칸이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죽음은 끊임없는 정복의 삶을 마감했고, 아들들이 키이우의 왕좌를 두고 피비린내 나는 경쟁을 벌이게 했다.
그가 죽자 그가 유지하던 균형은 무너지고 야로폴크와 올레그가 패권을 두고 싸우며 지역 유력자들까지 내전에 끌어들였다. 이 혼란은 결국 블라디미르의 부상을 위한 발판이 되었고, 루스 정치의 방향을 바꾸며 훗날 기독교화의 여건을 마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