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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호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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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성격

간략 정보

토지 개혁 법안 제출
빈곤 시민의 권리 주장
원로원 귀족에 도전

인생 여정

163 BC로마의 명문가에서 출생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는 로마에서 가장 저명한 가문 중 하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두 번 집정관을 역임했고, 어머니 코르넬리아는 한니발을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이었다.

157 BC그리스인 교사에게 교육 시작

어린 티베리우스는 우수한 그리스 교육을 받으며 수사학, 철학, 문학을 배웠다. 어머니 코르넬리아는 직접 교육을 감독하여 최고의 교사들에게 배울 수 있도록 했다.

154 BC아버지 사망으로 어머니가 가정을 돌봄

아버지 그라쿠스가 사망하여 코르넬리아가 홀로 자녀들을 키우게 되었다. 그녀는 재혼을 거부하고 자녀들을 자신의 보석이라 부르며 교육에 헌신했다.

149 BC소 스키피오 휘하에서 제3차 포에니 전쟁 참전

티베리우스는 매형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지휘 아래 카르타고 공격에 참가했다. 포위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카르타고 성벽을 처음으로 오른 인물로 전해진다.

146 BC카르타고의 멸망을 목격

티베리우스는 카르타고의 최종 파괴를 목격했다. 로마의 군사력을 보여주는 이 경험은 형성적이었다.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그 영토는 아프리카 속주가 되었다.

142 BC점관단에 임명됨

티베리우스는 신의를 해석하는 명예로운 점관단에 선출되었다. 이 종교적 직책은 젊은 나이에도 로마 엘리트 사이에서의 지위를 보여주었다.

139 BC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의 딸 클라우디아와 결혼

티베리우스는 클라우디아와 결혼하여 강력한 클라우디우스 가문과 연결되었다. 장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는 그의 개혁 계획의 중요한 지지자가 되었다.

137 BC스페인에서 만키누스 휘하의 재무관으로 복무

티베리우스는 재앙적인 누만티아 전쟁에서 집정관 가이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의 재무관을 역임했다. 로마군은 포위되어 누만티아인들에게 전멸당할 위기에 처했다.

137 BC협상으로 2만 로마 병사를 구함

티베리우스는 직접 누만티아인들과 조약을 협상하여 포위된 로마군을 구했다. 누만티아인들은 그를 신뢰했는데, 수십 년 전 그의 아버지가 스페인 부족들을 공정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137 BC원로원의 조약 거부로 공개적 굴욕

원로원은 조약을 거부하고 만키누스를 누만티아인들에게 넘겼다. 티베리우스는 이 운명을 면했지만 원로원의 행동은 그를 공개적으로 모욕했고 원한의 씨앗을 심었다.

134 BC에트루리아를 지나며 토지를 잃은 시민들을 목격

스페인으로 가는 여행 중 티베리우스는 부유한 지주들이 노예 노동으로 소농을 대체하는 것을 관찰했다. 토지를 잃은 로마 시민들이 노동자로 일하는 모습에 깊이 감동받았다.

133 BC평민 호민관에 선출

티베리우스는 호민관에 선출되어 입법을 제안하고 평민에게 해롭다고 판단되는 행위를 거부할 권한을 얻었다. 즉시 혁명적인 토지 개혁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33 BC셈프로니우스 농지법 개혁 제안

티베리우스는 1인당 500유게라를 초과하는 공유지를 토지 없는 시민들에게 재분배할 것을 제안했다. 이 법은 불법으로 광대한 공유지를 점유한 부유층에 직접 도전했다.

133 BC전례 없는 투표로 호민관 옥타비우스 파면

동료 호민관 마르쿠스 옥타비우스가 개혁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티베리우스는 투표로 그를 파면하는 혁명적 조치를 취했다. 이는 헌정 선례를 깨뜨려 보수파를 경악시켰다.

133 BC토지 개혁법 성공적으로 통과

옥타비우스 파면 후 셈프로니우스 농지법이 통과되었다. 티베리우스, 동생 가이우스, 장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를 포함한 토지 위원회가 빈민에게 토지 재분배를 시작했다.

133 BC아탈로스 3세의 유증을 토지 개혁에 사용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3세 왕이 왕국을 로마에 유증하자 티베리우스는 그 재보로 새 농민들을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외교를 통제하던 원로원을 더욱 분노케 했다.

133 BC호민관 연임 출마 선언

면책권이 끝난 후 보복을 두려워한 티베리우스는 전례 없는 호민관 재선을 추구했다. 이는 관례를 위반했고 적들은 그가 영구적 권력이나 왕위를 추구한다고 확신했다.

133 BC카피톨리누스 언덕에서 원로원 의원들에게 살해됨

선거 중 대신관 스키피오 나시카가 이끄는 폭도가 티베리우스와 지지자들을 공격했다. 그는 의자 다리로 맞아 죽었다. 거의 400년 만에 로마에서 처음 있는 정치적 살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