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외눈이라 불렀다. 그는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다. 80세에도 기병을 이끌고 돌격하며 알렉산드로스의 분열된 제국 재통일을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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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안티고누스는 아뮤타스 3세 왕의 통치 시기에 마케도니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이 시대는 마케도니아 세력 확장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다.
젊은 안티고누스는 마케도니아 군대에서 군사 훈련을 시작했으며, 나중에 그의 시대 최고의 장군이 되게 할 전술을 학습했다.
안티고누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 왕 휘하에 입대하여 필립의 확장하는 군대에서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안티고누스는 포위전 중 오른쪽 눈을 잃었으며, 이로 인해 '모노프탈무스'(한 눈의 사나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어 그의 특징적인 표식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에 대한 원정을 개시했을 때, 경험 많은 안티고누스는 그의 신뢰할 수 있는 장군 중 한 명이 되었다.
알렉산더는 안티고누스를 대프리기아의 사트랍으로 임명했으며, 이로써 확장하는 마케도니아 제국의 전략적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했다.
알렉산더의 죽음은 디아도키 전쟁을 촉발했으며, 안티고누스는 이 분쟁에서 가장 강력한 후계 왕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안티고누스는 카르디아의 에우메네스를 전투에서 격파했으며, 아시아 영토에 대한 통제를 확대하고 주요 라이벌을 제거했다.
안티고누스는 동쪽으로 원정을 펼쳐 동부 사트랍들을 복속시켰으며, 지중해에서 중앙아시아까지 광대한 영토에 대한 통제를 확립했다.
안티고누스는 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 및 기타 디아도키들의 연합군에 직면했으며, 헬레니즘 세계를 재편할 일련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안티고누스는 아들 데메트리우스 폴리오르케테스에게 주요 군사 지휘권을 위임했으며, 그를 자신의 확장하는 제국의 후계자로 준비시켰다.
데메트리우스의 살라미스 해전 승리에 따라 안티고누스는 왕(바실레우스)의 칭호를 취했으며, 이는 알렉산더의 통일 제국의 공식적 종말을 표시했다.
안티고누스는 데메트리우스를 로도스 섬 포위전에 파견했으며, 이 원정으로 데메트리우스는 '폴리오르케테스'(포위전의 달인)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안티고누스와 데메트리우스는 그리스 문제에 개입했으며,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대한 패권을 확립하고 카산드로스의 지배에 도전하려 시도했다.
셀레우코스, 톨레마이오스,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는 안티고누스에 대항하기 위해 최종 연합을 결성했으며, 결정적 대결의 무대를 마련했다.
안티고누스는 입소스 전투에서 다른 디아도키들의 연합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그의 죽음은 알렉산더 제국 재통일의 꿈을 끝냈지만, 그의 왕조는 후손들을 통해 계속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