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왕위에 있었고, 여왕과 결혼해 프랑스 종교 전쟁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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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프랑수아는 프랑스 왕위 계승자로 장엄한 퐁텐블로 궁전에서 태어났다. 앙리 2세와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아들이다.
어린 왕세자는 유아기부터 허약한 건강 상태를 보였고, 잦은 질병으로 궁정은 왕위 계승을 걱정했다.
어린 왕세자는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약혼하여 잉글랜드와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항하는 프랑스-스코틀랜드 동맹을 굳건히 했다.
프랑수아는 궁정 교사 아래서 교육을 시작했지만, 반복되는 건강 문제와 만성 감염으로 학업이 자주 중단되었다.
메리 스튜어트가 프랑스 궁정에 도착하여 프랑수아와 함께 자라게 되었고, 후에 사랑스러운 결혼으로 발전할 친밀한 우정이 시작되었다.
허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프랑수아는 미래 프랑스 국왕으로서 기대되는 통치술과 의례적 직무 훈련을 받았다.
프랑수아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한 예식으로 메리 스튜어트와 결혼하여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왕관의 미래 통합 가능성을 열었다.
메리 스튜어트는 후사 없이 사망할 경우 스코틀랜드를 프랑스에 양도하는 문서에 비밀리에 서명하여 기즈 가문의 야망을 강화했다.
아버지 앙리 2세가 마상 창 시합 사고로 사망한 후, 병약한 15세 프랑수아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2세가 되었다.
프랑수아의 외삼촌인 기즈 공작과 로렌 추기경이 사실상 정부를 장악하고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다른 파벌을 배제했다.
개신교 위그노파는 기즈 가문의 가톨릭 지배 아래 점점 불안해졌고, 후에 프랑스를 황폐화시킬 종교전쟁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국왕을 납치하고 기즈 가문의 권력을 제거하려는 위그노 음모가 발각되어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앙부아즈에서 대량 처형이 이루어졌다.
콩데 공 루이는 개신교 음모 가담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프랑수아의 죽음으로 목숨을 건졌다.
프랑수아는 중세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만성 귀 감염과 농양으로 고통받았고, 재위 기간 내내 심각한 병세가 계속되었다.
프랑수아 2세는 뇌로 퍼진 귀 감염으로 서거했으며, 재위 기간은 불과 17개월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메리 스튜어트의 프랑스 왕비 시대가 끝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