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위고 굶주린 자.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 끝까지 공화정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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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저명한 평민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폭정에 반대하는 전통이 있었으며 이는 그의 정치 경력과 궁극적인 운명을 형성했다.
카시우스는 재앙적인 파르티아 원정에서 크라수스 휘하의 재무관으로 복무했다. 크라수스가 카르헤에서 전사하자 카시우스는 잔존 군대를 안전하게 이끌어 10,000명을 구했다.
카시우스는 파르티아 침공에 대항해 시리아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적을 격퇴하고 동방에서 로마의 위신을 회복했다.
내전이 발발하자 카시우스는 카이사르에 대항해 폼페이우스에 합류했다. 그는 지중해에서 함대를 지휘하고 카이사르의 군대를 괴롭혔다.
폼페이우스의 패배 후 카시우스는 카이사르에게 사면받고 로마로 돌아왔다. 카이사르는 그를 법무관으로 임명하기까지 했지만 카시우스는 독재자 아래 사는 것에 대한 분노를 품었다.
카시우스는 로마에서 법무관으로 복무했다. 그는 시리아 총독직을 약속받았지만 처남 브루투스에게 밀려나 카이사르에 대한 불만이 깊어졌다.
카시우스는 카이사르 암살 음모의 추진력이 되었다. 그는 처남 브루투스를 포섭하고 원칙과 개인적 불만 모두에 의해 동기 부여되어 음모를 조직했다.
카시우스는 3월의 이데스에 카이사르를 찔러 죽인 원로원 의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독재자를 죽인 일격 중 하나를 가했다.
암살이 정치적으로 역효과를 낸 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여론을 음모자들에게 불리하게 돌리자 카시우스는 로마에서 도주했다. 그는 군대를 모으기 위해 동방으로 갔다.
카시우스는 시리아와 동방 속주에서 강력한 군대를 모집했다. 그는 돌라벨라를 물리치고 로마 세계의 부유한 동부 절반을 장악했다.
카시우스는 소아시아에서 브루투스와 합류했다. 함께 그들은 19개 군단을 지휘하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에 맞설 준비를 했다.
제1차 필리피 전투에서 카시우스는 안토니우스에게 패배했다. 브루투스도 졌다고 믿고 그는 해방 노예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사실 브루투스는 그날 자신의 교전에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