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에 사망한 어린 황제. 그의 짧은 치세는 한 왕조의 종말과 로마의 긴 변화의 시작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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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레오 2세는 이사우리아 출신 군사령관 제노와 레오 1세 황제의 딸 아리아드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어머니를 통해 이사우리아 왕조를 정통 테오도시우스 왕조 혈통과 연결시켰다.
레오 1세 황제의 딸 아리아드네를 통한 유일한 손자로서, 어린 레오는 황위 계승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의 외조부에게는 살아남은 아들이 없어 레오가 잠재적 황위 계승자가 되었다.
레오 1세의 건강이 악화되고 남성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린 레오 2세는 왕조에 점점 더 중요해졌다. 그의 이사우리아인 아버지 제노는 이 연결을 통해 궁정에서 영향력을 얻었다.
레오 2세는 잠재적 황제에 걸맞은 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궁정 교사들의 지도 아래 그리스어, 라틴어, 기독교 신학, 비잔틴 황실의 의례적 의무를 배웠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겐나디우스 1세의 죽음은 종교적 지형에 변화를 가져왔다. 어린 레오는 비잔틴 정치에서 황권과 교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목격했다.
레오 1세 황제는 손자를 카이사르 직위로 승격시켜 공식적으로 황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이것은 제노를 건너뛴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사우리아 출신 때문에 부적합하다고 여겼다.
474년 1월 18일, 임종을 앞둔 레오 1세 황제는 어린 손자를 공동 황제 레오 2세로 즉위시켰다. 노황제는 며칠 후인 2월 3일에 사망하여 7세 어린이가 유일한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외조부의 죽음으로 레오 2세는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어린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나이 때문에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없어 콘스탄티노플에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원로원과 어머니 아리아드네의 압력 아래, 어린 레오 2세는 474년 2월 9일 아버지 제노를 공동 황제로 즉위시켰다. 이 전례 없는 행위는 어린 황제가 자신의 아버지를 황제로 승격시킨 것이었다.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레오 2세는 콘스탄티노플 대궁전에서 어린아이로 살았으며, 환관, 교사, 궁정 관리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이 국정을 처리하는 동안 놀고 공부했다.
레오 2세의 초상이 새겨진 주화가 제국 전역에서 주조되어 황제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부 주화는 아버지 제노와 함께 묘사되어 공동 통치를 나타냈다.
황제로서 레오 2세는 하기아 소피아와 다른 교회들에서의 중요한 종교 의식에 참여했지만, 어린 나이로 인해 이러한 참석은 실질적이기보다 의례적이었다.
황궁은 제노의 지지자들과 이사우리아 영향력을 반대하는 자들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었다. 어린 레오 2세는 이러한 위험한 정치적 음모의 한가운데 휘말리게 되었다.
황후 아리아드네는 아들을 보호하고 궁정 정치를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레오 1세의 딸로서의 지위는 궁전에서 상당한 권위를 부여했다.
레오 2세의 치세는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했다. 그는 어머니 쪽을 통해 테오도시우스 왕조와 직접적인 연결이 있는 마지막 통치자였다.
474년 말, 레오 2세는 당대 사료가 소모성 질병이라고 묘사하는 중병에 걸렸다. 황실 의사들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태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레오 2세가 임종을 앞두고 누워 있을 때, 그의 아버지 제노는 단독 황제가 될 위치에 있었다. 궁정은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진정으로 통치하기 전에 병으로 쓰러진 어린 황제를 애도했다.
레오 2세는 474년 11월에 사망했으며, 황제가 된 지 불과 10개월 만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아버지 제노가 단독 통치자가 되었지만, 그의 짧은 치세는 테오도시우스 혈통과 비잔틴 황위의 연결 종료를 상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