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공산주의의 설계자. 스탈린 시대에서 살아남아 서방 최대의 공산당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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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팔미로 톨리아티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성장하며 정치적 여정을 시작했다.
톨리아티는 토리노 대학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등록했고 그곳에서 사회주의 정치에 참여하고 미래의 동지들을 만났다.
톨리아티는 이탈리아 사회당(PSI)에 가입하여 좌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톨리아티는 이탈리아 군대에 징집되어 제1차 세계대전 중 복무했고 이 경험은 그의 반전 및 사회주의 신념을 깊게 했다.
톨리아티는 볼셰비키와 연대하기 위해 사회당에서 분리된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창립 멤버였다.
톨리아티는 공산당 대표로 이탈리아 의회에 선출되어 국가 차원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무솔리니와 파시스트 정권의 부상 후 톨리아티는 체포를 피해 모스크바로 망명하여 망명 중에도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톨리아티는 이탈리아 공산당 서기장으로 임명되었고 죽을 때까지 이 직위를 유지하며 당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이끌었다.
톨리아티는 무솔리니 몰락 후 이탈리아로 귀국하여 전후 재건과 정치 지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톨리아티는 전후 첫 이탈리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근무하며 새로운 법적 체계와 헌법 질서 수립을 위해 일했다.
톨리아티의 지도 아래 이탈리아 공산당은 상당한 선거 성공을 거두어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정당이 되었다.
톨리아티는 소련의 헝가리 혁명 진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이탈리아 공산주의를 위한 더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길을 옹호했다.
톨리아티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지만 그는 계속 이탈리아 공산당을 이끌고 이탈리아 정치에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팔미로 톨리아티는 소련 얄타 여행 중 사망하여 이탈리아 전후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서의 유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