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정
엘리자베스 튜더는 9월 7일 그리니치 궁전에서 헨리 8세와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출생은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에게 실망이었지만, 그녀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이 될 운명이었다.
앤 불린은 반역, 간통, 근친상간 혐의로 참수되었다. 이 혐의들은 거의 확실히 토마스 크롬웰이 조작한 허위였다. 두 살배기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로 선언되어 왕위 계승권을 잃었다.
제3차 왕위계승법은 엘리자베스와 이복 언니 메리를 왕위 계승 서열에 복귀시켰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사생아로 간주되었지만, 이 법은 그녀의 미래 통치를 위한 길을 열었다.
헨리 8세가 사망하고 엘리자베스의 이복 남동생 에드워드 6세가 왕이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계모 캐서린 파와 함께 살게 되었고, 그곳에서 뛰어난 교육을 받았다.
메리 1세 여왕에 대항한 와이어트의 반란이 실패한 후, 엘리자베스는 반역 공모 혐의로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그녀는 두 달간 수감되었다가 우드스톡으로 가택연금되었다.
메리 1세가 사망하자 엘리자베스는 25세의 나이로 여왕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햇필드 하우스의 참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1월 15일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이 날짜는 점성술사 존 디가 선택한 것이었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왕국을 변화시킬 일련의 개혁에 착수했다.
엘리자베스는 의회와 협력하여 수장법과 통일법을 제정했다. 이로써 극단적인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중도적인 개신교 교회를 수립하여 종교적 갈등을 줄이고자 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퇴위를 강요받은 후 잉글랜드로 도망쳤다. 엘리자베스는 사촌을 거의 19년간 가택연금 상태로 억류했고, 이는 양측 모두에게 끊임없는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위해 보낸 스페인 무적함대가 패배했다. 영국 해군의 전술적 우위와 폭풍이 스페인 함대를 궤멸시켰다.
무적함대의 위협이 닥치자 엘리자베스는 틸버리에서 군대에 연설하며 유명한 선언을 남겼다.
교황 비오 5세는 교황 칙서 '레그난스 인 엑셀시스'를 발표하여 엘리자베스를 파문하고 그녀의 신하들이 충성 맹세에서 해방되었음을 선언했다. 이는 영국 가톨릭 신자들을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했다.
배빙턴 음모가 발각된 후 - 엘리자베스를 암살하고 메리를 왕위에 앉히려는 가톨릭 음모 - 메리 스튜어트는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사형 영장에 서명하기를 몇 달간 망설였다.
한때 엘리자베스의 총신이었던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이 배신은 늙은 여왕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2월 8일 포더링헤이 성에서 참수되었다. 엘리자베스는 영장이 그녀의 허가 없이 집행되었다고 주장하며 비서 윌리엄 데이비슨을 런던탑에 투옥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3월 24일 리치먼드 궁에서 서거하여 튜더 왕조가 막을 내렸다. 45년간 잉글랜드를 통치하며 엘리자베스 시대의 황금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