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사자. 전쟁의 기술을 혁신하고 개신교를 구한 스웨덴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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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구스타프 아돌프는 쇠데르만란드 공작 카를과 홀슈타인-고토르프의 크리스티나의 아들로 태어나 스웨덴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어린 구스타프는 언어, 군사 과학, 통치술에 대한 엄격한 교육을 시작하여 여러 언어에 능통해졌다.
불과 17세에 구스타프는 아버지의 사망 후 스웨덴 국왕이 되어 덴마크, 러시아, 폴란드와의 전쟁을 물려받았다.
구스타프는 크네레드 조약에서 덴마크와 평화를 체결하여 비용이 많이 든 칼마르 전쟁을 종결시켰다.
구스타프는 혁명적인 군사 개혁을 실시하여 기동 포병과 훈련된 보병을 창설해 전쟁을 변혁시켰다.
구스타프는 스톨보보 조약에서 러시아와 평화를 확보하고 영토를 획득하여 스웨덴 동부 국경을 안정시켰다.
구스타프는 브란덴부르크의 마리아 엘레오노라와 결혼하여 독일 개신교 세력과의 동맹을 강화했다.
구스타프는 리가를 점령하고 폴란드로부터 리보니아를 탈취하여 발트해 무역로에서 스웨덴의 우위를 확립했다.
구스타프는 발호프에서 폴란드에 대해 결정적인 기병 승리를 거두어 혁신적인 군사 전술을 선보였다.
웅장한 전함 바사호가 진수되었으나 비극적으로 스톡홀름 항구에서 처녀 항해 중 침몰했다.
구스타프는 군대를 이끌고 독일에 상륙하여 개신교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30년 전쟁에 극적으로 개입했다.
구스타프는 브라이텐펠트에서 가톨릭 제국군에 압도적 승리를 거두어 30년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다.
구스타프가 이끄는 스웨덴군은 바이에른 수도 뮌헨을 점령하여 독일에서 스웨덴 군사력의 정점을 나타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뤼첸에서 기병 돌격을 이끌다 전사했으며, 승리했으나 절정기의 스웨덴 제국을 남겼다.
구스타프는 사후 '북방의 사자'로 칭송받았으며, 현대 전쟁 기술의 창시자로 오늘날에도 연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