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의 지도자: 엔히크 왕자는 신세계, 부, 권력으로 가는 항로를 그렸다.
대화 시작하기
인생 여정
엔히크 왕자는 주앙 1세 왕과 랭커스터의 필리파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영국인 어머니는 영국과의 강한 유대와 학문 전통을 가져왔다.
엔히크는 포르투갈 궁정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형제들과 함께 수학, 천문학, 지도 제작, 항해술을 공부했다.
엔히크는 무어인 도시 세우타 정복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의 첫 거점은 그의 평생에 걸친 탐험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엔히크는 비제우 공작과 코빌량 영주가 되었다. 이 작위들은 야심찬 해상 원정에 자금을 지원할 자원을 제공했다.
엔히크가 후원한 탐험가들이 마데이라 제도를 재발견했다. 이로써 대서양 섬들에 대한 포르투갈의 식민화가 시작되었고, 원양 항해가 가능함이 증명되었다.
엔히크는 템플 기사단의 후계인 그리스도 기사단의 단장이 되었다. 기사단의 재산은 그의 탐험 계획 자금 조달을 도왔다.
엔히크의 후원을 받은 포르투갈 선원들이 아조레스 군도를 발견했다. 이 섬들은 대서양 항해의 중요한 중간 기착지가 되었다.
엔히크가 후원한 질 에아네스가 유럽인 최초로 보자도르 곶을 통과했다. 이 심리적 장벽은 수년간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진전을 막고 있었다.
엔히크는 탕헤르에 대한 재앙적인 원정을 이끌었다. 그의 동생 페르난도가 포로가 되어 무어인 감옥에서 사망했고, 이는 수년간 엔히크를 괴롭혔다.
포르투갈 선장들이 보자도르 곶 이남에서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와 사금을 가져왔다. 이로써 비극적인 대서양 노예무역이 시작되었다.
유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 공개 판매가 엔히크의 권한 아래 라고스에서 열렸다. 그는 모든 이익의 왕실 5분의 1을 받았다.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세네갈 강에 도달하여, 해로로 사하라 사막 너머에 황금과 다른 부가 있음을 증명했다.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카보베르데 제도를 발견했다. 엔히크는 아프리카 탐험을 위한 기지로 식민화를 명령했다.
교황 니콜라오 5세가 서아프리카에서의 포르투갈 탐험과 무역을 인가하는 칙서를 발부했다. 이로써 엔히크의 사업에 종교적 정당성이 부여되었다.
포르투갈 카라벨선이 오늘날의 감비아, 기니비사우, 시에라리온에 도달하여 황금, 상아, 노예의 새로운 교역로를 열었다.
엔히크는 사그레스의 왕자 저택에서 사망했다. 그는 직접 항해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의 후원이 대항해시대를 열고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