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끈기, 승리. 일본 내전을 끝내고 250년 평화를 연 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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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로 태어났으며, 마쓰다이라 히로타다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강력한 이마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 사이에 낀 소규모 다이묘였다. 그는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태어났다.
어린 다케치요는 아버지의 동맹을 확보하기 위해 이마가와 가문에 정치적 인질로 보내졌다. 그러나 오다군에 붙잡혀 오다 노부히데의 인질이 되어 수년간의 포로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 히로타다가 자신의 가신에게 암살당한 후, 다케치요는 교환되어 이마가와 가문으로 보내졌다. 그는 슨푸에서 인질로 성장기를 보내게 되었다.
다케치요는 이마가와 가문의 감독 하에 원복 성인식을 거행하고 마쓰다이라 모토야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카자키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여전히 이마가와의 가신이었다.
이에야스는 첫 번째 아내 쓰키야마도노와 결혼했다. 그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친척이었으며, 이마가와 가문이 주선한 정략결혼이었다. 그녀는 훗날 장남 노부야스를 낳았다.
오다 노부나가가 오게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죽이자, 이에야스는 이마가와의 지배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았다. 오카자키성을 탈환하고 자신의 세력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이 동맹은 2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양측의 부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이름을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바꾸었다.
쓰키야마도노가 다케다 가문과의 공모 혐의로 처형되었고, 장남 노부야스는 할복을 명받았다. 이 비극적 사건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 가족도 희생할 수 있는 이에야스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에야스는 아네가와 전투에서 군대를 이끌고 노부나가와 함께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과 싸웠다. 이 승리로 오다-도쿠가와 동맹이 강화되고 영토 지배가 확대되었다.
이에야스는 전설적인 다케다 신겐과 맞서 최악의 군사적 패배를 당했다. 겨우 목숨을 건졌으며, 이 경험을 통해 인내의 가치와 경솔한 행동의 위험을 배웠다.
노부나가와 함께 싸우며 혁신적인 대규모 조총 전술을 사용하여 다케다 가문에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다케다의 군사력이 붕괴되고 이에야스의 동부 국경이 안정되었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살해당했을 때, 이에야스는 교토 근처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었다. 닌자의 도움으로 이가국을 통과하는 위험한 탈출을 감행하여 암살을 간신히 피했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노부나가 유산 계승에 이의를 제기했다.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결국 히데요시의 우세한 자원을 인정하고 화친했다.
이에야스는 공식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신종하고 오사카로 참배했다. 히데요시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어머니를 인질로 보내어 히데요시 최강의 가신 지위를 확보했다.
히데요시가 호조 가문을 정복한 후, 이에야스는 간토 지방으로 이봉을 명받았다. 작은 어촌이었던 에도를 본거지로 선택했으며, 이곳이 훗날 도쿄가 되었다.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는 어린 후계자 히데요리의 오대로 중 한 명이 되었다. 250만 석을 보유한 최강의 다이묘로서 일본 지배를 위한 책략을 시작했다.
이에야스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무라이 전투에서 동군을 이끌고 서군을 격파했다. 16만 명 이상의 무사가 충돌했으며, 이에야스의 승리로 일본 지배권을 획득하고 역사를 영원히 바꾸었다.
고요제이 천황이 이에야스를 정이대장군에 임명하여 도쿠가와 막부가 수립되었다. 265년간의 도쿠가와 통치와 평화로운 에도 시대가 시작되어 일본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이에야스 군대는 마침내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켰다. 히데요리는 자결하고 오사카성은 함락되어 도쿠가와 패권에 대한 마지막 위협이 사라졌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슨푸성에서 서거했으며, 사인은 아마도 위암이었다. 사후 도쇼다이곤겐으로 신격화되었다. 그의 인내심 있는 전략과 정치적 천재성은 일본에 250년의 평화를 가져온 왕조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