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정복왕, 레콩키스타의 핵심 인물, "두 신앙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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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알폰소는 페르디난드 1세와 산차 데 레온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존한 둘째 아들로서, 그는 처음에는 더 명망 있는 카스티야보다는 레온 왕국의 계승자로 예정되었다.
아버지의 서거 시, 알폰소는 페르디난드 1세의 아들들 간의 영토 분할의 일환으로 레온 왕국을 상속받았다. 그의 형 산초 2세는 카스티야를 받았다.
알폰소는 형제인 카스티야의 산초 2세와 갈리시아의 가르시아 2세와의 분쟁에 휘말렸는데, 각각은 상대방의 영토 확장을 시도했다.
형 산초 2세에게 패배한 후, 알폰소는 톨레도의 무슬림 궁정인 알-마문의 궁에서 유배를 강요받았고, 아랍어를 배우며 무어 정치에 대한 귀중한 지식을 얻었다.
산초 2세가 자모라 포위전에서 암살된 후, 알폰소는 유배에서 돌아와 레온과 카스티야 왕국을 자신의 통치 아래 통일하여 이베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군주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엘 시드)는 알폰소에게 산초 2세의 죽음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맹세하도록 강요하여 둘 사이의 긴장을 야기했다.
알폰소 6세는 '모든 스페인의 황제'(Imperator totius Hispaniae)라는 칭호를 채택하여 반도의 모든 기독교 및 무슬림 왕국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했다.
알폰소는 부르고뉴의 콘스탄스와 결혼하여 클루니악 개혁 운동과 프랑스 귀족과의 견고한 유대를 형성했다. 그녀는 클루니악 수사들을 스페인 교회의 개혁에 소개했다.
알폰소 6세는 고대 서고트족의 수도인 톨레도를 점령하여 재정복 시대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명성을 가져왔지만 무슬림 세력들을 경악하게 했다.
북아프리카의 알모라비드 군대가 살라카 전투에서 알폰소의 군대를 격파했다. 알폰소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쳤으며 대부분의 군대를 잃었다.
알폰소는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엘 시드)를 영구적으로 추방했으며, 그는 독립적으로 발렌시아를 정복했다. 둘의 복잡한 관계는 지속적인 긴장의 원인이 되었다.
알폰소는 방어 조치에 집중하여 알모라비드의 습격에 저항하고 힘들게 얻은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국경 지역에 성들을 건설하고 강화했다.
콘스탄스의 서거 후, 알폰소는 프랑스의 이사벨과 결혼했다. 그의 여러 번의 결혼은 왕조 전략과 개인적인 비극을 반영했으며, 여러 아내가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알폰소의 유일한 적출아 산초가 첩 자이다(이사벨로 세례받음)에게서 태어났다. 알폰소는 재정복 운동을 계속할 이 상속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알폰소의 아들 산초가 알모라비드에 대한 비극적인 우클레스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절망적인 손실은 알폰소의 정신을 꺾었고 그를 남자 상속인이 없는 상태로 남겼다.
알폰소 6세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비통함 속에서 톨레도에서 서거했다. 그의 딸 우라카가 뒤를 이어 내전의 시대를 열었다. 그의 톨레도 정복은 지속되는 유산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