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적인 요크셔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거칠고 격렬한 상상력과 도덕적 긴장이 어우러진 고딕 걸작 「폭풍의 언덕」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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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
에밀리 제인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의 성공회 성직자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랜웰 사이에서 잉글랜드 손턴 마을에서 태어났다. 설교와 엄격한 규율, 그리고 웨스트요크셔의 황야에 둘러싸인 책이 많은 대가족 환경 속에서 성장의 기틀을 맞이했다.
패트릭 브론테가 하워스의 상주 보좌사제로 부임하면서 가족은 하워스 목사관으로 옮겨 갔다. 펜나인 구릉의 황야와 목사관 옆 묘지는 에밀리의 내면 세계와 훗날 글쓰기에 오래 남는 배경이 되었다.
마리아 브랜웰 브론테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여섯 남매는 패트릭 브론테의 돌봄 아래 남게 되었다. 에밀리는 실질적으로는 고모 엘리자베스 브랜웰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고, 콘월 출신인 고모의 절약과 생활 방식은 가정의 일과에 영향을 주었다.
에밀리와 언니들은 코언 브리지의 성직자 딸 학교에 보내졌는데, 그곳은 훗날 빅토리아 시대 학교 비판에 비쳐질 만큼 가혹한 환경이었다. 엄격한 생활과 질병은 브론테 남매에게 닥칠 비극을 예고하는 듯했다.
학교 환경과 연관된 병을 앓은 뒤 마리아와 엘리자베스 브론테가 사망하자, 에밀리는 하워스로 데려와졌다. 가족의 깊은 슬픔은 남매들이 서로에게 더 의지하게 만들었고, 독서와 놀이로 이루어진 사적인 세계가 더욱 단단해졌다.
장난감 병정 한 벌을 계기로 샬럿, 브랜웰, 에밀리, 앤은 목사관에서 정교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특히 에밀리와 앤은 곤달이라는 세계를 발전시키며, 아주 작은 손제본 책에 시와 연대기, 극을 빼곡히 써 내려갔다.
에밀리는 샬럿이 훗날 교사로 일하게 되는 로헤드 학교에 입학했으나, 향수병과 낯선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곧 하워스로 돌아와 고독, 황야, 규칙적인 공부와 글쓰기를 더 선호했다.
에밀리는 로힐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긴 노동 시간과 엄격한 규정, 여성 교육 노동에 흔한 육체적 부담을 겪었다. 이 경험은 독립에 대한 결심을 더 굳혔지만, 하워스를 떠나 갇힌 듯한 생활을 몹시 싫어했다.
로힐에서의 요구가 너무 커 지친 에밀리는 사직하고 목사관으로 돌아왔다. 하워스에 돌아온 뒤에는 집안일과 더불어 강도 높은 사적 글쓰기를 재개했고, 긴 홀로 걷기가 그의 창작 비전을 붙드는 기반이 되었다.
에밀리와 샬럿은 훗날 자신들의 학교를 세우기 위해 언어 실력을 높이고자 기숙학교로 떠났다. 엄격한 지도 아래 에밀리는 프랑스어와 독일어에 자신감을 얻었으나, 여전히 과묵하고 강한 자존심을 지킨 채 내면에 머물렀다.
엘리자베스 브랜웰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에밀리는 목사관으로 돌아와 브뤼셀 생활을 마쳤다. 귀향은 황야와 남매의 긴밀한 공동체로 그를 되돌려 놓았고, 글쓰기는 다시 가장 중요한 출구가 되었다.
샬럿 브론테는 에밀리의 시를 우연히 읽고 그 독창성, 힘, 그리고 냉정할 만큼 날것의 정서적 압력을 알아보았다. 이 발견은 자매들이 시대의 여성 작가 편견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시도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단의 성차별적 편견을 피하기 위해 남성 필명을 사용한 공동 시집이 한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에밀리의 작품은 응축된 강도, 자연 이미지, 굽히지 않는 어조로 특히 두드러졌다.
에밀리의 유일한 장편소설 「폭풍의 언덕」이 런던에서 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초기 평단은 폭력성과 도덕적 모호함을 불편해했지만, 대담한 구조와 원초적인 열정은 새로운 고딕적 사실주의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필명 뒤의 정체를 두고 추측이 난무했고, 일부 비평가들은 여성이 그토록 거칠고 폭넓게 쓸 수 없다고 의심했다. 에밀리는 사생활을 지키는 쪽을 택했으며, 샬럿은 그들의 정당성을 دفاع하며 성별과 체면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시선을 헤쳐 나갔다.
오랜 중독과 병약함 끝에 패트릭 브랜웰 브론테가 사망하며 가정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 뒤 몇 달 사이 결핵이 가족에게 퍼졌고, 에밀리에게도 정서적·육체적 부담이 점점 뚜렷해졌다.
에밀리는 결핵으로 보이는 심각한 증상을 겪으면서도 일상적 습관을 끝까지 유지하려 했다. 당시의 의료 처치를 널리 거부하며 냉정한 독립성을 지켰고, 이는 가까운 이들마저 놀라게 했다.
에밀리 브론테는 하워스 목사관에서 세상을 떠났고, 성 미카엘 및 모든 천사 교회의 가족 묘실에 안장되었다. 그의 죽음은 몇 달 뒤 앤의 죽음보다 앞섰으며, 이후 샬럿이 자매들의 공적 유산과 소설의 후대 명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